군 제대 후 반 강제로 한 1년의 휴학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다른 친구들은 벌써 게임을 2~3개씩은 개발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동경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게도 기회가 왔다. 창업동아리에 가입한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잘 살려서 가능한 한 많은 개발 경험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개발 과정을 일기 형태를 빌려 기록하고자 한다. 나중에 보면 이불 뻥뻥 차는 창피한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마추어 개발자로써 이런 경험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놓으면 개발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다. 이 일지 하나하나가 미래의 내 무기가 되고 경쟁력이 되길 기대한다.




8월 8일 화요일 1차 총회의가 진행되었다. 기존에 만들었던 "샴의 미로"라는 작품을 리뉴얼 한다. 이 게임은 형편없다.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품평회 자리를 빌어 소개하겠다.) 나는 당초 회의에 참여하지 못할 상황이었기에 사전에 프로듀서와 플래너에게 나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일러두었다.

1. 2인 플레이 버리자
- 기능상 제약도 많고 참신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는데 그냥 버리자
2. 카메라 기능 강화하자
-화각기능과 관련아이템추가
    제한된 범위만 촬영가능
    아이템으로 촬영범위 확장
    체감난이도 상승 효과 기대
-셔터스피드 기능 추가
  대략적인 장애물의 위치 및 이동경로 파악가능
  전략적 플레이 기대
-필름 추가
  촬영 매수 제한으로 필름 관리 필요
  필름 아이템으로 촬영가능매수 증가
  (FPS의 총알과 같음)
3. 다양한 아이템을 추가하자
- 이삭의 구속처럼 랜덤하게
   운빨요소 추가
4. 게임 컨셉과 스토리를 통일하자
- 게임의 깊이감 증대

이 제안서를 작성하면서도 나는 당최 이 게임이 재밌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회의는 한 번만 하지 않는다. 애초에 팀을 나눈 것은 명분일 뿐 모두가 같이 기획회의에 참여한다."

나는 주재넘게도 단독의견을 플래너와 프로듀서에게 직접 피력했던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자 다행스럽게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1차 총회의 때 모아진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게임 방향을 추리퍼즐에서 러닝퍼즐로 전환한다.
-사진 시스템을 없애고 플레이어 1명이 두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하여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타임어택류의 게임이 될 것이다.
2.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구축한다.
-게임안에 튼실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하여 깊이감을 더하고 컨셉 잡는 작업을 용이하게 한다.
3. 스토리에 맞추어서 모든 그래픽요소를 뒤엎는다.
-특히 캐릭터는 여러 코스튬을 만들어서 게이머의 욕구를 해소한다.
4. 두가지 버전으로 개발한다.
-하나는 전시회에 출품할 버전으로 이 버전이 정식 버전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재 관련 기관에 제출할 버전으로 우리 문화재를 알리는 기능성게임이 될 것이다.
5. 이 모든 과정을 11월 초까지 완료한다.

  내 의견이 전체적으로 반려되었지만 이쪽 기획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별다른 반론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플래너의 성향이 게이머의 피지컬을 중시하는 성향이라 진입장벽과 난이도가 대단히 높은 게임이 될 것이라 예상해본다.

  개발 회의가 끝나고 프로듀서님이 나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내년부터 차기 프로듀서로 내가 지목된 것이다. 워낙 개발팀의 인원이 작다보니 그나마 학번이 높지만 1년 늦게 졸업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원래는 플래너 자리를 원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를 원했으니까. 대단히 아쉽지만 나는 플래너 자리를 포기했다. 언젠가 해야할 일이라면 지금 경험해봐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모든 경험 중에 헛된 경험은 없다던 시게루님의 말을 가슴에 새겼고,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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